영성 신학자 헨리 나우웬 신부가 노틀담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예고도 없이 불쑥 연구실로 찾아와 스케줄을 흐트러 놓는 방문자들로 인해 자주 짜증이 났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고도 없는 방문객들로 인해 그날 하루 일정이 완전히 망가져 매우 불편한 심기로 교정을 걷고 있었습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걷고 있는데, 친구 교수 한 사람을 만납니다.
친구 교수가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나? 자네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군.”
헨리 나우웬 신부가 대답합니다.
“아침나절에 예고도 없이 몇 사람이 찾아와 하루 일정이 완전히 망가졌다네.”
그러자 그 친구가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방해받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헨리 나우엔은 순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계획과 일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는 자신의 일정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예고도 없이 그를 찾아올 때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이라고 믿고 그를 기쁘게 맞이하였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글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름대로 일정이 있는데 방해를 받을 때는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심각하게 방해를 받으면 약간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태도가 내 삶의 영역들을 모두 내 손아귀에 쥐려고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선포하는 식의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얼마나 비신앙적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주인이라면 주님의 보내 주신 예고 없는 방문자들을 언제든지 환영하고 예고 없는 일에 불림을 받는 일도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낯선 사람을 통하여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십니다.
그런 다음 우리가 짜놓은 빡빡한 일정을 다 깨고 주님이 준비하신 기막힌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춤추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려면 둘 사이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내가 손을 잡고 춤을 추려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움직이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빈공간은 때로는 예고 없이 방해를 받는 일이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은 부름을 받고 방해를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 하실 수 있는 공간을 내어드리는 신비한 일임을 다시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