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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해(눅4:16-30)
성탄절 다음 날이 송년 주일이다. 그래서 성탄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서 살펴보면 좋겠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은혜다. 예수님이 곧 복음이다. 복음은 옛날에 전쟁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말한다. 전쟁에 지면 그날로 노예가 되고 인생이 망한다. 그래서 전쟁 승리의 소식은 복음인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제 전쟁이 끝났고 이제 축복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19절에서 이것을 ‘주의 은혜의 해’라고 하였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한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되고 그다음 50번째 해다. 희년이 되면 전국의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크게 분다. 이스라엘 온 땅에 나팔소리가 들리면 희년이 선포되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땅, 가족, 물질을 되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노예가 없다. 모두가 자기 땅을 소유한 자작농들이다. 다만 살다가 망하고 병들어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아야 할 때가 있다. 가진 것이 없이 빚을 지면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희년이 되면 모든 빚은 탕감 받고 잃었던 토지는 되찾고 가족은 돌아온다. 희년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거리마다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내일의 회복을 꿈꾼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런 희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같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희년이 구약의 희년과 다른 것은 물질적인 회복뿐만 아니라 영적인 회복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것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희년을 누릴 수 없다.
죄인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지 모른다. 실수로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과거를 지우고 싶고 시간을 돌리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일기장을 불태워도 안 되고, 머리 모양을 바꾸어도 안 된다. 그런데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회복의 기적이 일어난다. 언제 새롭게 되는가? 21절에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예수를 받아들이면 오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반응이다. 지금은 은혜받을 때이고 구원의 때라는 것을 알고 주님을 지금 모시면 희년의 은혜가 임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고 한다. 기적을 행해 보라는 듯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에게는 하나도 아쉬움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자기의 무지와 교만을 모른다. 자기 한계를 모른다.
그래서 주님은 두 사람의 이방인을 예로 든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이다. 두 사람의 신분은 과부와 장군으로 극과 극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진정 자신의 가난함을 알았던 사람이다. 사렙다 과부는 가난하여 한끼 먹을 양식을 가지고 그것을 먹고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그 양식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을 때 기꺼이 내어놓았다. 한끼 양식이 내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려서 엘리사에게 왔지만,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치료 방법이 자기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에 있던 부하가 나아만이 지금 문둥병자라는 것을 자각시켰을 때 그는 자기의 실상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처럼 사람들이 자기의 실상을 깨닫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래야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래야 새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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