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나이 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이 든 흔적이 우리 몸 이곳저곳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모자람의 위안>이라는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은 나이 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한계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목차만 봐도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질 때-몸의 한계,
나는 완벽한 부모가 못되었다-관계의 한계,
이루어 놓은 일도 없이-성취의 한계,
장미꽃이 시들때-로맨스의 한계,
어디 기댈 데 없나-자신감의 한계,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책임의 한계,
사는 재미?-즐거움의 한계,
째깍째깍 인정사정없는 초침소리-시간의 한계,
그런다고 나아지나-낙관의 한계….
온통 요즘 제가 경험하는 한계들이라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어쩌겠습니까?
그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모자랍니다.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샤르댕의 기도문이 생각납니다.
한계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조금씩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몸에 하나둘 나이 먹은 흔적이 생길 때,
그리고 이 흔적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
나를 조금씩 움츠러들게 하고 쇠약하게 하는 질병이 몸 안팎에서 생겨날 때,
나도 병들고 늙어 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으며 두려움 속에 빠져들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만들어 왔던,
알지 못하는 위대한 힘들의 손길 안에서
자신을 잃어 가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침내 느낄 때!
오 이 모든 암울한 순간에,
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제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와
저를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저를 조금씩 분해시키는 과정임을!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도 저만큼이나 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연약함과 모자람이 주님 앞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