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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롬 13:11-14)
새해가 되어 나이가 드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을 넘긴 사람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마음도 든다.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때 무섭고 당황스러워했던 적이 있다. 사실 내가 늙는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면서 서글퍼 한다. 그래서 세월을 노래하는 가사는 대체로 우울하다. 아름답고 싱그러운 젊음을 버리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종착지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쇠퇴하고 소멸하기에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서글픈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나이 드는 것을 구원이 가까워진 것이라고 말한다. 11절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세상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각이다. 우리는 쇠퇴하고 소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라고 채워져서 완전한 구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원은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고 한 것과 같다. 주님을 만나서 주님처럼 될 날을 기대하고 사는 사람과 인생의 공허와 허무를 느끼고 사는 사람은 시간 개념에 있어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클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것은 신자에게는 얼마나 소망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여러분들도 그런가? 기대와 소망으로 설레고 감사한가?
기대와 소망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그날을 준비하게 된다. 설령 지금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깨어난다. 신자도 잠자고 어둠에 처할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새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수 믿고서 지금까지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일어나지 못하면 새날을 맞을 수 없다. 일어나는 시간부터가 새날이다. 4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4시에, 9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9시에 새날을 맞이한다. 그런데 일어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12절에서, 일어나서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그냥 옷이 아니라 갑옷이라고 한 것은 일어나는 일이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을 잔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행하는 일을 말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행하는 나쁜 일들을 말한다. 우리는 남들이 보지 못하고, 하나님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육체의 본성대로 행하기 쉽다. 잠을 잘 때 특징은 내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내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도 잘 모른다. 그때는 누가 깨워주어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미루다가 늦게 일어난 사람이 자기를 일찍 깨우지 않았다고 식구에게 화를 낸다. 일어나야 자기가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일깨워야 한다.
빛의 갑옷을 입고 단정히 행하는 것을 1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라고 했다. 왜 우리는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하는가? 결국 예수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처음과 끝이다. 예수처럼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어쩌다가 되는 일이 아니다. 예수의 길을 걷다가 종국에 예수처럼 된다. 아니 작은 예수가 된다. 지금 입은 예수의 옷이 우리에게 치수가 큰 옷인지도 모른다. 옛날 명절이면 엄마는 꼭 큰 치수의 옷을 사서 입혔다. 가난해서 자주 사 입히지 못하니까 내년에는 맞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큰 옷을 입혀 주셨다. 주님도 같은 심정이다. 그날에는 맞게 될 것이니 지금부터 예수의 옷을 입고 살라 하신다. 이번 설날에는 잠자지 말고 일어나서 꼭 예수의 옷을 입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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