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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가자(시51:1-12)
어거스틴 참회록의 뼈대가 되었던 말씀이다. 토스트예프스키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이 시편을 읽었다고 한다. 바흐의 음악은 시편 51편의 말씀을 예술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시편 51편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은 어느 순간 본향을 그리워하듯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어떻게 돌아오는지 잘 모른다. 시편 51편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말씀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1절에서 다윗은 ‘주의 인자’와 ‘주의 많은 긍휼’을 의지하고 있다. 대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런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이렇게 변화될테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한다. 자기를 내세우고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의지한다. 죄의 본질과 맞부딪힌 다윗은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노력을 보고 용서할 수 있는 죄가 아니다.
그래서 3절에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항상 죄는 자기 앞에 있다. 모든 것을 벗겨내고 최후에 남아 있는 벌거벗은 자아의 모습이 죄인이었다. 죄인 됨의 본질을 알게 된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돌이켜보았다. 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라고 했다.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충분히 사죄하였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주께 범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으로 이것은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한 것이다. 목전에 악을 행한 것은 하나님의 눈을 찌르고 죄를 범했다는 뜻이다. 대놓고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다.
하나님 목전에서 행한 죄의 내용을 볼 때 다윗은 자기 존재 자체가 죄 덩어리고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눈을 찌를 수 있는가? 그래서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무얼 해볼 수 없다. 다윗은 탄식처럼 6절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라고 한다. ‘보라’는 것은 강조법이다. 무얼 보라는 것인가? 존재 자체가 죄인이라는 이 사실을 보라는 것이다. 이 죄를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이 내게 없다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저지른 갖가지 죄악을 통해서 내가 주님께만 범죄하고 주님 앞에서 악을 행한, 본질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회개한 적이 있는가? 그때가 언제인가? 다윗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6절)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우슬초는 나병환자에게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정결함은 자기의 도덕적 노력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부터 씻음을 받을 때 오는 것이다. 우리가 넘을 수 없는 근원적 죄의 한계를 씻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보혈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보혈로 씻김을 받으니까 첫째, 8절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제야 비로소 복음의 소리가 들린다. 구원의 기쁨이 회복된다. 둘째, 10절 정직한 내면이 새롭게 되는 체험을 한다. 보혈은 새로운 마음을 창조한다.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된다. 셋째, 11절, 성령을 주신다. 이런 사죄의 은총을 누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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