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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잠18:21)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은 우리 삶을 지배한다. 본문 말씀 앞부분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 했다. 혀의 힘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말에는 살리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죽이는 능력도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 세상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흑암을 향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빛이 있었다. 이 빛으로 생명이 살아날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과 생명을 만드셨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말을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창세기 3장에서 말은 죽이는 능력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뱀이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이 이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공격한다. 하와는 동산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의 열매는 먹지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하니까 뱀은 정말 그러냐? 거짓말이라고 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는 순간에 어둠에 떨어지고 말았다. 뱀은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을 가져오는데 말을 사용했다. 더구나 뱀의 말은 진실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말에는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도 말씀하셨고 마귀도 말을 하였다. 하나님은 말이 처음부터 살리는 능력과 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말로 사람을 세우시고 축복하신다. 마귀는 말로 사람을 넘어뜨리고 저주한다. 창세부터 말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말씀은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어둠 가운데 빛을 가져다 주고 죽음 가운데 생명을 가져준 그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말씀하실 때 힘이 있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고 치유하시고 축복하시는 패튼으로 일하신다. 풍랑이는 바닷가에서 폭풍을 잠잠케 하실 때도 어떤 동작으로 하신 것이 아니다. ‘잠잠하라’는 말로 잠잠케 하셨다. 죽은 나사로가 있는 무덤에 가서도 예수님은 그를 살리실 때 그의 이마를 손으로 친 것이 아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는 말씀으로 그를 다시 살리셨다. 말은 이렇게 죽음 가운데 생명을 어둠 가운데 빛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도구다.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금을 받았고 말하는 능력을 주셨다. 그 말로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혀의 열매를 우리가 먹기 때문이다.
28절 뒷부분은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다. 말이 씨가 된다는 뜻이다. 말은 허공에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씨앗처럼 심겨져서 씨앗처럼 싹트고 씨앗처럼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살리는 말을 심으면 생명의 열매를 맺고 죽이는 말을 심으면 죽음의 열매를 맺는다. 말을 절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말이 이렇게 열매를 맺는 것은 민14:28에 있는 말씀대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말을 들으신다. 기도의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는 말, 원망 불평도 들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들린대로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도 기도 말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원망하다가 정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매일 아침저녁마다 좋은 말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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