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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을 위한 자세(수5:1-9)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 약속의 땅은 그냥 들어가서 차지하면 되는 곳은 아니다.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땅이다. 이제 진군을 앞에 두고 있다. 대적들은 소문을 듣고 벌써 두려움과 겁에 질려 있다.(1절) 이대로 쭉 밀고 나가면 이스라엘이 단번에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의 전진을 멈추게 하신다. 그리고 전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다.(2절) 왜 하필 여기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할례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표시다. 스스로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분명히 하고 전진하라는 뜻이다. 믿음의 길에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한 자각이다. 그래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우리가 차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히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이다. 그리고 이 싸움의 대장은 하나님이시다.(14-15절)
할례를 행해야 한다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하던지, 아니면 적어도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그 안에서 행하는 것이 좋다. 대적들이 훤히 볼 수 있는 평지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무장해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대적의 정탐꾼들이 이 사실을 알고 기습공격이라도 해오면 막아낼 재간이 없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니 부싯돌로 할례를 행한 뒤 적어도 한 주간은 꼼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정을 머뭇거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지체없이 순종했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했다.(3절)
수십 수백만 명의 군사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바닥에 누워 있다고 상상해 보라. 길갈 평원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누워 있는 무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큰 전쟁을 코앞에 두고 적진 앞에서 무력하게 뻗어 있는 이 모습이 마치 큰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실려 힘없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사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하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는 자기 부인이다.
마리아는 어느 날 천사의 방문을 받고 메시야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자기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던 때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약혼자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미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세상 상식과도 다르고 보편적 경험과도 다른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해야 선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선택할 때 ‘애굽의 수치’가 떠나가게 하셨다.(9절) 애굽에서는 욕망대로 살면서 떡 한 조각에 양심을 팔고 비굴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제 정말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육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따랐다. 우리 인생도 약속의 땅을 향한 전진을 위한 싸움이다. 우리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전진하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볼 때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진짜 부끄러운 것은 애굽에서의 굴종이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만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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