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적당한 게 좋다고 하지만
신앙생활은 적당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철저한 신앙인들뿐이네요.
철저하다 못해 처절했던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것은
신앙의 삶이란 모름지기 그러해야 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신앙생활 끝에 얻는 면류관은
싸워 이긴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고대의 원형 경기장에서 사투를 벌인 뒤에
이겨서 살아남은 자가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군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철저해져야 하는 것 일까요?
어떤 사람으로부터 우상과 관련된 것을 취급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도가 없다는 간청을 들었을 때
교부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꼭 살아야만 하는가?”
이상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쳐 부활을 경험한 사람이
제 스스로 걷는 길이 놀랍게도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부활은 십자가 없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시 사는 일을 보장받은 사람만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활절,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