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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욘1:1-3)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물의 자리를 지정해 주셨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바다의 물과 강의 물의 자리를 지정해 주셨다. 물들이 자기 자리를 지킬 때 땅에는 풀과 채소가 자랐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땅은 땅으로 바다는 바다의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가정에서 아내는 아내 자리, 남편은 남편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가정이 된다. 교회에서 목사는 목사의 자리, 성도는 성도의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
사람이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는 하나님 얼굴 앞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두셨다. 사람을 좀 더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이 정해 준 자리에 머물지 않고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했다. 그런데 선지자인 요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향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 머물지 않고 자기 몫을 챙겨 먼 나라로 갔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여 두신 곳에 잘 머물지 못한다. 아담은 지금보다 더 큰 것을 바랬고, 요나는 하나님이 두신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탕자는 더 큰 자유와 쾌락을 찾아서 떠나버렸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한 아담을 하나님은 찾으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있는 곳이 네가 꼭 있어야 하는 자리인지 성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추하게 되고 더럽게 된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고 요나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고통을 안겨주고 자신은 깊은 물 속에 빠지는 아픔을 당하게 되었다. 탕자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람은 이후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요나는 하나님의 추적으로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오게 되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자비하신 아버지는 넓은 품으로 안아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이 정해준 자리를 떠나는 것은 자기가 중심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살아갈 때 우리는 추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 가장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머물렀던 요셉은 비록 고생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 종으로 팔려왔을 때도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곳이 억울한 자리였지만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강간범으로 오해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는 그 자리가 하나님 앞에 있는 자리라고 믿고 참았다. 어떤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두신 자리라고 믿고 최선을 다했다.
풍경이라는 노래가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가 전부이다. 이 노래를 불렀던 하덕규는 한때 제 자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었다. 밤새 방황하다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는 어느 예배당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그 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자리였음을 고백한다. 코로나19로 아직도 제 자리에서 벗어나서 방황하고 있다면 다시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되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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