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이 태어났을 때 손녀딸은 귀엽지만, 공식적으로 할아버지가 된 것이 무척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체념했습니다.
며느리가 임신을 하고 딸도 또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1년 안에 한 명이 아닌 무려 세 명의 할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이왕이면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사정을 말하면 슬며시 화제를 자신에게 돌립니다.
누군가 “내가 어제 속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라고 말하면 “의사가 뭐라고 그래?”
혹은 “갔다 와서 좀 나아졌어?”라고 묻는 대신에 “나도 2주 전부터 속이 더부룩해서 병원에 갔더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자신에게 대화의 초점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며 나이가 들면서 남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자 사역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가정교회를 처음 방문한 후 계속해서 참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목장 식구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나서 두 세시간 이야기를 해도 경청하며 들어주니 다음에 다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사랑으로 들어줄 때 상대방에게 내적 치유가 일어납니다.
성경공부에 익숙한 사람들이 목장 모임에 처음 참석하면 세상 적인 이야기만 나누다가 헤어지는 것 같아서 얻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적 치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남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니면 남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잘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단순하게 사는 것 같은 사람도 깊숙이 알고 보면 상당히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같이 느껴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모든 사람이 소설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집중력과 인내가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남의 말을 중간에 가로채거나 아예 끊는 경우가 잦아집니다.
아름다운 노인이 되려면 남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남의 말을 경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