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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창4:9-10, 시133:1-3)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한마디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도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부모도 자녀들이 각각 잘 되는 것 이상으로 서로 어우러져 사는 것을 보기 원한다. 하나님도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개인적인 복을 받는 것을 원하시지만 그 이상으로 바라는 것은 형제가 서로 어우러져 사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서로 분열하고 파괴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왜 가인은 아벨을 죽였는가? 아벨이 가인을 해치는 일도 없고 손해를 끼친 일조차도 없다. 다만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고 아벨의 제사를 받았을 뿐이다. 아벨을 향한 가인의 시기심이 이런 일을 저지르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에 대해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했다. 가인의 대답 속에 가인의 마음이 엿보인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 것은 가인에게 네 동생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일에는 너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그런데 가인은 걔는 걔고 나는 나라고 대답한 것이다. 여기에 단절이 있고 분열이 있고 무관심과 무책임이 있다.
가인과 아벨의 깨어진 모습 속에 오늘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도 많은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함께 어우러짐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돌보고 책임지는 존재로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자기는 아벨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마치 자기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처럼 말한다. 오늘 우리는 가인이 후예들이다. 서로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시기심과 질투가 일어날 때뿐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 너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던 그래서 어쩌면 마음으로 지워버렸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시편 133편은 하나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준다. 1절에서 형제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하며 놀라고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영생’으로 끝나고 있다. 형제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어우러짐의 모습을 ‘기름부음’으로 또 ‘이슬내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름을 부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그리고 부드러워지고 향내가 난다. 형제가 어우러지는 모습 속에 능력이 있고 부드러워지고 향기가 난다.
또 형제의 어우러짐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 헐몬산에서 시작된 물이 요단강이 되어 사해까지 흐른다. 헐몬과 시온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물이 흘러가면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낸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넘쳐 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형제의 하나됨이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까지 흘러 내리면서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과 같다.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선택한 길이 있고 시편 133편에서 형제가 어우러지는 길이 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꿈을 위해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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