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네 다리를 모두 다친 여우를 보았습니다.
야생동물이 다리를 다치면 사냥을 하지 못해서 금방 굶어 죽습니다.
며칠 후, 같은 장소에 가보니 다리 다친 여우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는 여우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 궁금하여 옆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여우가 이제 죽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호랑이가 여우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습니다.
“우와!! 다친 여우도 하나님이 저런 식으로 먹이시는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일하지 않고 누워 지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도 먹을 것을 보내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영양실조로 죽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왜 내게는 호랑이를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했습니다.
"왜 너는 호랑이를 본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우를 본받으려고 하느냐?"
이 사람은 자기 입장으로만 바라보고 좋은 것을 기다렸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입장을 달리해서 볼 줄 아는 눈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형이 성공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형은 동생에게 멋진 자동차를 선물해주었습니다.
동생은 형이 선물해 준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알고 지내던 동네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저씨, 새 자동차 사셨네요?"
"아니 내가 산 것이 아니고, 형이 선물로 사주었어."
"정말 부러워요."
"너무 부러워하지 마. 너도 장차 크면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을 날이 올 거야."
그러자 아이가 대뜸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선물 받은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자동차를 선물해줄 수 있는 형님이 부러운 거예요. 나도 커서 동생에게 좋은 것을 선물해주는 형이 될 거예요."
무엇을 부러워하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미래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자기입장에서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교회에서 일할 때, 내 입장을 먼저 고려하기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