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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15)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죄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많은 허물과 약점을 가진 연약한 존재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죄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예수님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12절) 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죄 용서와 우리의 죄 용서를 긴밀하게 연결해 놓았다. 이 구절은 몇 가지 논리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이미 용서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둘째, 우리가 용서해 준 것을 근거로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셋째,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일까?
첫 번째 두 번째 경우는 확실히 우리에게 부담감을 준다. 우리가 용서했기에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아도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여지를 조금도 남겨놓지 않았다. 가령, ‘형제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조차도 없다. 이미 용서하고 와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나가서 용서하는 것이 옳다고 하시는 뜻이다. 두 용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만큼 주님은 신자가 변화를 받아들일 것을 재촉하고 있는셈이다. 세 번째 경우, 용서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용서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기 전에 주님은 먼저 용서하셨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탕자가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는 이미 용서하였다. 보통은 회개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신다. 값없는 은혜다.
하나님의 용서는 전제 조건이 없지만, 의도는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처럼 그렇게 다른 이들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14절,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용서에 조건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였다.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조건 없는 용서와 조건을 가진 용서가 어떻게 병립할 수 있을까? 용서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두 가지가 병립될 수 있다. 용서는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시고 그다음 우리가 용서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먼저 용서를 베푸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용서를 주신다고 해서 모두가 그 용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용서라는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약 용서라는 선물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용서만큼 어려운 것도 없고 용서만큼 우리 신앙을 성숙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마음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그의 마음에 쌓인 분노를 푸는 길은 그에게 진실하게 용서를 비는 길밖에 없다.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용서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를 것이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했을 때 용서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악마적이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데도 용서하는 것은 신적인 것이다. 주님은 신적인 용서를 하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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