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아까 왜 울었어?”
워싱턴주에 살면서 몇 달 전 처음으로 휴스턴을 방문한 동생이 주일 예배가 끝난 후에 물었습니다.
남자가, 게다가 형이 회중 앞에서 눈물을 흘리니까 당혹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는 예배 때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가끔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이 저리도록 다가올 때 그렇습니다.
저는 일골 살 때 부모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인생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라는 계산적인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이 있습니다.
항상 아쉬움을 갖고 살던 어느 날, 계시처럼 내게 아버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마음의 빈 곳을 채워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삶을 풍성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더불어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깨끗이 사라졌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엄마, 아빠에게 응석을 부리고 말썽을 부려도 다 받아 주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 계시처럼 하나님이 그런 사랑을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큰일까지 맡겨 주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눈물을 흘리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또한 제 가슴속에는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인 기자와 외국 기자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공산정권에 의해 캄보디아가 무너졌을 때 탈출하지 못한 주인공을 외국인 기자 친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 구출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 우정이 아름다워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또 한 번의 계시처럼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친구라는 사실입니다.
나를 찾을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신실한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