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기독교 공동체 <부르더호프 공동체>에서는 “사랑으로 직접 말하기”라는 훈련을 강조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이런 규정은 부부 사이에도 엄격히 지켜져야 합니다. 혹 불만이 있거나 감정이 상해서 서로 충돌한다면 꼭 둘이 만나서 풀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그 사람을 찾아가서 직접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당사자와 대화하지 않고 제3자에게 뒷말로 험담을 나누는 것은 사실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의 또 다른 규정은 어떤 일에도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평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 있기에 작은 바람으로도 광풍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흔들고 깨지게 만드는 일에 이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 할 공동체에서 누군가 험담하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연쇄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공동체 전체를 차갑고 쌀쌀한 분위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체로 험담과 불평은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합니다. 깊은 내막과 전후 사정을 모른 채 선입견이나 추측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한 사람의 무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라는 시에서 작은 대추 한 알을 보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것이다” 작은 대추 한 알이라도 사연을 알게 되면 그것이 소중해집니다. 대추 한 알마저 그런데, 우리에게 왜 사연이 없겠습니까?
목회하면서 갈등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과 각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기준과 경험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 창립 5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까지 우리를 지켜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 가운데서도 꾸준히 제자리를 지키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의 사람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은 공동체로 세워지도록 우리 안에 사랑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기도하기로 마음을 다짐하는 오늘 창립 기념 주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