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도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저에 대한 불평불만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임할 때부터 항상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고마워하게 되었습니다.
트집잡히지 않기 위하여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었고, 오해의 여지가 있을 만한 일들을 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20년간 큰 실수 없이 목회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덕분입니다.
목회에 유익을 준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담임 목사가 싫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불평불만을 하는 교회 생활은 행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믿음도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평을 쏟아놓으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평할수록 불만이 더 증폭됩니다.
1960년대에 screaming therapy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인형이나 베개를 자신이 미워하는 상대라고 가정하고 거기에 분노를 표출하거나, 주먹으로 그것을 때려서 분을 삭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할 때 분노가 사그라지기보다 더 커진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 불행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지 못합니다.
불행이나 행복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90%라도 흡족하지 못한 10%에 집중하면 불행해지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90%일지라도 10%의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혀입니다.
혀는 영적 측정기이며 영적 조절기입니다.
성령 충만한지는 감사의 말을 하는지, 불평의 말을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사의 말을 하면 행복해지고, 불평의 말을 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빌 4:8)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의지적으로 행복한 생각을 하고 행복한 말을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