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지도 않고 분주히 다니지도 않고 오래 쉬는 것은 목회 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병명을 듣고 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는 시간부터 수술 후 쉬는 시간 동안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락거렸습니다. 성대 신경이 손상되면 어떻게 하나? 설교는 어떻게 하지? 어느 때까지 어떤 방식으로 쉬어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잘하는 목회가 아니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설상가상이구나 등등.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준 것은 주님이었지만 주님이 임하신 통로는 ‘예수기도’였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마취하는 순간, 의식이 돌아와서 회복하는 동안, 퇴원 후 기도원에서 보낸 시간 내내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만 천천히 되풀이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시간이 많이 흐르자 어느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눈을 마주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분 옷자락 앞에 엎드려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몇 해 전 우리 교우들과 함께 21일 ‘예수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원래 기독교 전통에서 전해오던 기도문을 축약해서 드렸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도 좋습니다. ‘예수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쉬지 않고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특히 복잡한 생각이 많거나 염려가 있을 때 이 기도문을 천천히 여러번 반복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어느 순간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도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니까요. 주님께 가까이 나가는 방식이 각각 다를 뿐입니다. 저는 이번에 예수 기도를 통해 고통과 번민의 순간에도 주님 가까운 곳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저 같은 죄인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이지요. 주의 자비는 우리 교우들을 통해서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걱정해 주시고 염려해 주시는 눈빛을 통해 교우들의 사랑에 주님의 자비가 더하여 전해졌습니다. 결국 이번 일은 저에게 난처한 일이 잇달아 더해지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 아니라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진 은상가은(恩上加恩)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이끌어주신 주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고 염려하며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우리 교우들께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