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어부인 사람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잡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무척 지치고 허탈할 것 같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같은 심정이 된다. 인생이 쳇바퀴 돌 듯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드로는 어느 날 밤새도록 일을 했지만 잡은 것이 없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로와 상실감을 안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베드로의 빈 배에 올라타셨다. 몰려드는 군중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마치 우연히 베드로의 배에 올라탄 것 같아 보인다.

베드로는 그물을 씻으면서도 한쪽 귀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있었다.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적 말씀 같이 들렸다. 말씀을 마치신 다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가 순순히 따를 만큼 좋게 들리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이 지시한 곳은 지난 밤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하나도 잡지 못했던 실패의 현장이다. 또 고기 잡는 일이라면 이 바닥에서 베드로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최고의 전문가로서 이 바닥에서 뒹굴었던 사람이다. 그런 자기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선생이 고기 잡는 일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선을 넘는 일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운동선수에게 제가 운동 방법론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것이 말 안되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고 비웃어야 할 일이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깊은 곳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베드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깊은 곳으로 가라는 뜻이다. 즉 자아 중심적인 삶을 떠나서 주님이 지시하시고 말씀하시는 더 깊은 중심을 향해서 나아가라는 뜻이다. 자아 중심적인 삶에 빠지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다고 할 뿐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에 그치지 않고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가서 조용히 그물을 내렸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때는, 자기 경험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고 자기 지식으로도 한계 상황을 넘는 것이지만 ‘그래도 주님이 해보라고 하면 다시 해보겠습니다’하는 뜻이다. 내가 주인이고 내가 사장이고 내가 전문가인 영역에 주님이 오셔서 주님이 이곳에서도 내가 주인인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 하고 물을 때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현장이고 심할 때는 거친 육두문자가 오가는 그런 곳이지만 그래도 주님은 그런 현장에서도 내가 주인이 맞느냐고 물으신다. 그때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릴 때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된다. 베드로는 눈이 열리면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인 줄 알았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 인생을 이끄실 수 있는 분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앞으로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거두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러자 베드로가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라거나 ‘아직 당신이 누구신지도 잘 모르는데요’라고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기로 결단한다. 굉장히 귀한 결단이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세우는 방식은 베드로 때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