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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롬3:21-26)
젊은 시절 예수 믿으면서 가진 고민 중 하나는 신앙생활 해도 내가 잘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죄인이 의인이 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수 믿고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되지 않으니까 낙심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너무 큰 죄인이라서 하나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하고 실망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복음을 오해했다. 복음은 죄인인 나를 하나님이 변화시켜서 성자처럼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음이란 죄인인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나처럼 복음에 대해서 오해했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한 것을 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갖추기 위해서 그는 수시로 고해성사를 하고 스스로 고행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루터는 나중에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의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의라고 할 때 ‘의’는 ‘공정’ ‘정의’라는 뜻이 아니고 ‘바른 관계’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이 올바르다는 것인데 그 관계에 있어서 신실하고 충실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다. 그런데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피조물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관계를 깨뜨린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죄라고 한다.
관계를 깨뜨리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벌을 받고 진노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창조주로서 책임을 충실하게 감당하신다. 관계를 깨버린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게 행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데 이것을 두고 성경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절정이 예수님이다.
25절에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라고 했다. 화목제물은 원어로 ‘속죄소’ ‘속죄판’이라고 한다. 속죄소는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의 뚜껑이다. 모든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진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와서 이 속죄소 위에 양과 염소의 피를 뿌린다. 그러면 백성들의 죄가 씻기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런 속죄판으로 세우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므로 우리 죄를 속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어긋난 관계를 바로잡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고 복음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의가 곧 내 의가 된다. 그러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시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의 은혜가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능력이 된다. 변화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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