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성령 받았다’는 교인들로 인하여 곤혹스러워하는 목회자들을 종종 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불러다가 예언의 말씀이라고 주기도 하고, 담임 목사에게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니 듣고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재난이나 역경이 따를 것이라고 위협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온종일 듣는다면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하라시면 하고, 아무리 당연한 일이라도 하라지 않으시면 안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하라셨다면서, 난데없이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와 무릎 꿇는가 하면, 찬양 예배 때 인도자가 손을 들자고 해도 하나님이 하라지 않으셨다고 손을 안 들기도 합니다.
이런 교인들이 생기면 목사들은 당혹스럽습니다. 자신이 영적 체험이 없어서 이해가 안 되나 자책이 되기도 하고, 이들을 질책하거나 비판하다가 성령님을 거역하게 되는 것이나 아닌가 싶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주셨습니다. 거짓 예언자는 열매는 보라고 하셨습니다(마 7:15-18). 이처럼 성령 받았다고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잔잔한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정신 분열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배우자와 자녀들과 관계가 멀어지고, 부모나 친구들과 소원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보기 어렵습니다(갈 5:22-23). 이런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성령님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진짜 성령 체험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또 하나의 가이드라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고전 12:3). 이렇게 말한 사도 바울의 의도를 잘못 이해해서, 귀신이 들렸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말해 보라고 해서 따라 하면,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고 단정짓기도 하는데, 영특한 귀신이 이런 말 따라 하는 것을 주저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내뱉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성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재현되도록 하고, 예수님 닮게 만들어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 한 마디로 제자를 만들라고 주셨습니다.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이상하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이 두 가지가 결여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비신자가 예수 믿게 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고, 이들의 삶 속에 예수님의 삶을 특징짓는 순종과 섬김의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