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 모임에 가면 교회가 어렵다고들 이구동성이다.
인구감소의 벽을 말하기도 하고, 코로나를 거치면서 교회의 속살이 드러났다고도 한다.
교회가 세상보다 못하다는 말을 나도 종종 듣는다.
이름은 교회라지만 가보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신앙생활은 예수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종교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원칙이 그렇다는 뜻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된 원인은 성도 간 사랑의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
처음 교회가 출현했을 때 급격하게 성장했다.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을 목격한 사람들이 “나도 저 무리에 끼어서 한데 어울리고 싶다”고 한 것이 성장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주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다.
제자 됨의 가장 분명한 표지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를 입어 과분하다는 의식이 없으면 사랑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들이 마치 베데스다 연못가 같다.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가장 먼저 뛰어들면 어떤 병이든 지 낫는다.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우습다.
38년 동안 병이 깊어져 거동이 어려운 환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늘 낙심한다.
은총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베데스다의 은총이 가장 멀다.
세상살이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선착순 원리가 은혜의 집에서도 작동한다.
경쟁에서 이긴 그나마 남보다 더 힘 있고 빠른 사람이 은혜의 집을 차지한다.
혹시 교회가 이런 곳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질서가 그대로 통용되면서 오히려 더 낙심하고 실망하는 곳.
그러나 다행이다.
베데스다 연못을 방문한 예수님이 38년 된 환자를 만나주셨다.
예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예수님은 은혜가 절실한 사람부터 만나주셨다.
은혜와 자비는 예수님으로부터 흘러온다. 그분이 자비의 원천이시다.
예수님 방문이 없는 베데스다 연못은 허울 좋은 은혜의 집일뿐이다.
주님, 오늘 56년 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진짜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