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교회 가운데에는 1년에 한 두어 번 '40일 새벽 기도회'를 갖는 교회들이 꽤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기라성 같은 설교자들을 초 청하여서 강단에 세워 설교를 듣습니다.
이런 교회 담임 목사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설교 귀가 높아진 교인들을 만족시킬만한 설교자를 지속적으로 모시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분은 첫 번째 분보다 더 설교를 잘 하는 분이라야 하고, 그 다음 분은 그 전 분보다 더 잘 하는 분이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더 훌륭한 설교자를 발견해야하는 그 압박감을 감당해내는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을 보면 웬만한 설교자는 우습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부흥회를 가져도 웬만한 강사가 아니면 참석치를 않습니다.
자신이 귀를 기울일만한 설교자가 되려면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이 되어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은 사실 우스운 것입니다.
좋은 설교를 많이 들었다는 사실이 본인의 믿음 수준이 높다는 증거도, 본인이 영적이라는 것을 증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훌륭한 설교자의 설교만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 사실이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이요 하나님의 스피커입니다.
스피커 질이 좋지 않으면 소리가 변질되듯이 설교자 의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전달 될 때에 그 음성이 변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도들은 잡음 섞인 소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골라내어 듣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설교를 별로 잘하지 못하는 데도 은혜를 받고 헌신을 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어떤 설교자가 강단에 서도 은혜를 받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 교인들이야말로 진짜 수준 높은 교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강단에 종종 서는 이수관 전도사님, 신동일 목사님, 하병진 목사님, 구지홍 목사님들은 잘 알려진, 세련된 설교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신실한 설교자들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설교를 합니다.
이들이 강단에 섰을 때에 그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은혜 받는 우리 교인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