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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창28:10-19)
돌베개를 베고 자던 들판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꿈 한번 잘 꾸었네’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절)라고 하였다. 이 짧은 감탄문은 꿈속이지만 야곱이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고 하나님의 약속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만난 주신 것이다. 야곱의 인생은 이 사건 전후로 달라진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가? 오래 교회를 다니고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내 생각을 믿는 것이다. 신앙은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가르침이나 교훈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손흥민 선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손흥민 선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주님의 인격성에 있다. 주님이 생생한 실제이시다. 주님을 경험할 때 주님은 마음속에 어디에 있는 분이거나 아니면 하나의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죄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말하고 구원은 단절된 것이 이어져서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을 말한다. 자폐아를 가진 엄마의 고통은 자녀와 소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엄마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단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야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장자권이 아니다. 안전이 아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연결이 되고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이 야곱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도 하늘과 땅이 연결되듯이 주님과 내가 연결되어야 한다. 주님을 영접하신 분들은 이미 주님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래도 지금 여기에 계시는 주님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영적으로 어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죄를 지어 의도적으로 주님을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어린 사람에게도 주님은 찾아가 주시고 심지어 죄를 짓고 멀리 도망가려고 해도 주님은 찾아가서 만나 주신다. 영적으로 성숙하지만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우선 가장 흔한 것이 영적 방심 혹은 영적 타성 때문이다. 평소 일상에 푹빠져서 눈에 보이는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우리가 그를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세균이나 박테리아도 저절로 보이지 않기에 보려고 하는 의지가 없으면 볼 수 없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갈망하고 찾아야 한다.
영적으로 성숙하더라도 내가 다른 욕망에 주목하고 빠져 있으면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 가인도 아벨을 죽일 때 사람들이 없는 들판에 가서 죽였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윗은 여인을 향한 욕망 때문에 간음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 보려면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돌베개 베고 잠을 자야 하는 야곱과 같은 심정이다.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기 원하신다. 눈을 떠고 고개를 들어서 지금 여기에 계신 주님을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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