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나눔터
HOME > 나눔터 > 나눔터
나는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창1:1-2)
어린 나이에 입양 가서 이제 성인이 되신 분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방문했다. 아무리 애써서 부모를 찾을 길이 없어 기억의 마지막 장소인 입양 기관 앞에 가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도 나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면 그 인생의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하나님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고백이 ‘나는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모든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성경은 시작된다.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 이야기로 읽으면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창조 이야기는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기 위한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전기 지금 전기포트에 물이 끓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질문해 보자. 누가 대답한다. ‘전기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전환되어 물이 데워졌고, 이제 물의 끓는 점에 도달했기에 물이 끓은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차를 마시려고 물을 끓인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창세기의 언어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창조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자취하는 남성이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새벽 늦게 방에 왔다. 오후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누군가 북어국 한 상을 차려 놓았다. 자기가 술에 취한 것,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인지, 방문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주변을 돌아보니 밥상 옆에 쪽지 하나가 있었다. ‘아들, 밥 차려놓았다. 엄마가’ 이제보니 모든 것이 이해 된다. 집 비밀번호를 아는 것, 자기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북어국을 끓여 놓은 것은 엄마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일이 이 세상에도 일어났다. 내가 깨어나 보니 우주 속에 있었다. 하나님이 쪽지로 내가 차려 놓은 것이라고 해주셨다. 음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누가 상을 차렸는지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창조 이야기는 창조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서 창조는 그분이 하신 일이라고 일러 주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서 자신을 소개하신 것이다. 창조주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과 신앙의 갈림길이 만들어진다. 창조주를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은 우연의 산물이고 불확실성이라는 우주의 한 가운데 놓인 고아와 같다. 자기의 뿌리를 찾지 못해서 입양 기관 앞에서 눈물을 흘린 그 사람과 같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추구하며 쾌락을 누리고 살면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면, 오늘 내가 왜 이 자리에 있고 지금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창조에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를 고백하면 인생의 모든 계획을 창조주의 뜻에 맞추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다. 존재의 목적을 모르면 냄비의 받침대로 값비싼 테블릿pc를 사용할 수도 있다. 어리석은 인생이다. 한 가지 질문, 하나님이 창조주라면 왜 내 삶은 이리도 비참한가? 우리는 오래되어 고장 난 바이올린과 같다. 악기를 만든 최고의 연주자를 찾아가서 그분에게 맡겨보라.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