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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150719, 요1:1-1-18)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150719, 요1:1-1-18)
본문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말하고 있다. 한 때 그도 예수가 단순한 랍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분이 보통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혹 메시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이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처형당하는 것을 본 뒤로는 메시야고 전도고 다 포기하고 옛날 직업으로 돌아갔다.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나서야 이분이야 말로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고 이런 깨달음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더 깊어졌다. 이 깨달음과 감격을 기록한 것이 요한복음이다.
요한은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하였을까? 당시 히브리 사람들에게 말씀이라고 하면 창조의 능력을 떠올렸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헬라 사람들은 말씀하면 질서의 능력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보존하고 지켜주는 질서가 ‘로고스’(말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요한은 여기서 예수가 창조의 능력이시고 세상 만물을 지키고 보존하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3절에서도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천지 만물을 지으셨던 분이시고 지금도 천지 만물을 유지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짧은 이해로 이분의 크기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나? 14절에서 이런 분이 인간으로 오셨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분이 왜 인간으로 오셨을까? 인간이 되시는 것 자체가 수모이고 치욕이 될 수도 있는데 왜 오셨을까? 18절에 따르면,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싶어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분을 본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엄청난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다른 시도를 하지 말라. 그런 시도 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도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을 사랑해주셨기에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분인 것을 예수님의 용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오신 주님을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대하였는가? 배척하였다. 감사하고 감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싫어하고 거부하였다. 결국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다. 왜 그랬을까? 주님은 빛이고 우리는 어둠이기 때문이다. 빛 앞에 서면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도둑이 가로등을 깨버리고 작업을 시작하듯이 우리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봐 빛이신 분을 배척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만약 그 당시 그곳에 내가 있었다면 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이기심과 교만과 부패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지금도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사람이다. 우주를 만들고 지탱하고 계신 분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셨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도 우리가 계속 거부한다면 정말 우리는 천벌을 받아도 마땅할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믿을만한 마음이 안 생긴다고, 나는 아직 내 머리 속에서 그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사실 얼마나 가소롭고 유치한 짓인지 아는가? 속히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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