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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난 사람들(150802, 요1:35-51)
예수를 만난 사람들(150802, 요1:35-51)
가치를 알아보고 추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랜 동안 열망해야 하고 그것을 마음에 그리며 품고 살아야 그것을 만날 때 비로소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시>라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연세가 드신 할머니이지만 문학소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문화센터를 찾아가서 시를 배운다. 문화센터에서 시를 가르치는 강사는 실제로 김용택 시인이 출연한다. 김용택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이나 보셨습니까? 백번? 천 번? 그러나 여러분은 어쩌면 사과를 한번도 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 보는 것입니다. 오래 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에 스민 햇볕도 상상해 보고, 그렇게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본다는 것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고 그럴 때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새로운 눈이 열릴 수 있다.
예수가 곁에 있지만 진정 그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였다. 세례요한이 예수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갔던 사람은 세례요한의 두 제자뿐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물음이다. 무엇을 열망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우리도 대답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예수를 찾아왔는가? 구원을 찾는가, 예수 덕을 보려고 하는가, 예수를 구하려는 것인가? 예수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구원을 찾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찾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예수를 만난 안드레는 자기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에게로 인도했다. 그 다음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는 길에서 빌립을 만나서 ‘나를 따르라’고 하였다. 빌립도 세례요한의 증언을 들었을 것이다. 빌립은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다. 보잘 것 없는 예수의 겉모습은 그를 선뜻 따르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빌립은 그를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내면적인 싸움을 싸웠던 것 같다. 그런 빌립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믿음은 계산이 아니다, 믿음은 결단이라고 여기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 머리로는 주님을 따른 후의 결과를 계산해 낼 수 없다.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서 계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결단이고 맡김이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는데 그는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하며 예수를 소개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하고 일단 부정했다. 아마 나다나엘은 나사렛에 대한 선입견과 상처가 있었던 것 같다. 다 좋아도 나사렛이라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에게로 갔는데,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오히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하고 칭찬해 주었다. 나다나엘은 어떻게 자기를 아시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고 하였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가 무화나무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이스라엘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런 순수한 열망에 대해서 예수님은 감동하였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찾아서왔든지, 불러서 왔든지, 가족이나 친구가 인도했든지 그들은 이제 이전 보다 더 큰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생명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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