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곳에 꽃 피우며 살자
“돈이 없어 못 사 잡수시는 분은 누구든지 서슴없이 말씀하시면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지하철 관악역 근처에 있는 작은 분식집 앞에 붙어 있는 현수막입니다.
가게 간판은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도 않고 겨우 몇 사람만 들어갈 작은 공간에
몇 개의 식탁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이곳에서 장사하는 백정남 아주머니는
하루 매상 3분의 1이나 되는 무료 손님들을 위해서 오늘도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IMF시절 한 중년 남자가 빵을 훔치다가 잡혔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 처진 어깨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이 현수막을 만들어 걸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물품이나 옷가지들도 모아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일도 한답니다.
사진으로 본 가게 안의 모습은 참 초라하지만 환히 웃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천사 같습니다.
제 눈에는,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높은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 아주머니가 더 크게 보입니다.
백정남 아주머니는 머무는 곳에서 꽃을 피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감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크게 나타나 보이지 않아도 오늘 제 몫의 향기를 발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무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어떤 곳이 나의 꽃을 피우기에 가장 이상적인 자리인지 고르려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이상적인 자리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지금 내가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라고 충고합니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행복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에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 행복입니다.
정채봉 시인의 ‘오늘’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답하지 않았네
밤하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오늘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늘 하루를 무심하게 보낸 것이
시인을 슬프게 하였던 모양입니다.
감사절입니다.
오늘 하루를 다시 돌아보고 지금 여기에서 감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