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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151220, 요8:12-20)
생명의 빛(151220, 요8:12-20)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어둠은 위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어둠이라는 것은 꼭 해가 떨어져서 어두워지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 가운데서 어둠을 겪을 때가 많다. 어려움을 당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질 때가 있다. 그 때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어둠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빛이 필요한 이유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다. 당신을 따르면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돕고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캄캄한데 누가 빛을 비추어주면 ‘와’하고 환호를 지른다. 그런데도 어둠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지 않는다. 본성상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도 빛이신 예수님에게 나아가지 못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니 그들은 ‘웃기지 마라, 스스로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증인이 어디 있느냐?’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들은 왜 빛이신 주님에게 가서 도움을 받지 못했을까? 오늘 우리와 다르지 않는 이유이기에 살펴보기를 원한다. 왜 그들은 빛이신 주님에게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첫째,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알았다. 사실 예수님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몰랐다.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 하느니라”(14절하) 그들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알았을 뿐이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십자가의 죽음은 실패의 상징이자 증거로만 여겨졌다. 우리도 일주일에 한번 설교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빛이신 주님에게로 나아가지 못한다.
둘째,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알았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15절상)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의 시골 목수의 아들로만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인간적으로만 아는 사람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분의 빛을 받을 수 없다. 주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창조주로 믿으면 창조주로 다가오신다. 인간적으로 믿으면 인간적으로 다가오신다. 생명의 빛을 경험하려면 초월적으로 믿어야 한다.
셋째, 그들은 성경을 잘 몰랐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 하시느니라” (18절하) 구약성경은 생명의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성경을 잘 몰랐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
성탄절은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날이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4:16) 예수님은 빛을 비추어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빛을 비추지 않으면 자기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추시어 자기를 알게 하고 구원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빛이신 주님앞에 나아오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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