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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통해 살아내야 할 삶
부활하신 주님은 그날 저녁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상처 입은 몸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단순한 인사가 아닌 것은 이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사실 제자들은 해 당할 것을 무서워하여 그들이 모인 곳의 문을 꼭 잠그고 있었다. 두목을 죽였으니 언제든지 부하도 죽일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세상에서 말하는 평화와 좀 다르다. 세상의 평화는 외부의 조건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싸움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평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말하는 평강은 외부적인 상황이나 환경하고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 제자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아니다. 여전히 당국자들은 살기등등하고 언제 어느 때 해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평강이 있으라고 말하면 저절로 평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평강이라는 단어의 뜻에 ‘하나가 되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 평강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할 때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다. 약속하신대로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는 것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우리의 연합은 우리가 주님이 있기 원하는 곳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평강은 그런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두 번째 말씀을 하신 것이다. 주님이 가기를 원하는 곳에 우리가 있을 때 실로 주님의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고향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함께 해주셨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이 평강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고향이 아니고 주님이 가라고 하신 그곳에 갈 때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길 원하고 계실까? 23절에 의하면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부활의 주님이 하신 일을 알리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다.(22절) 숨을 내 쉬는 것이 이색적이다. 유추해보면, 하나님이 처음 아담을 창조하였을 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했다. 이렇게 생명을 얻은 피조물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여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다시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우리가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재창조의 역사다. 우리 힘만으로는 세상을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성령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는 것도 결국은 성령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이 하시기 원하는 일에 우리가 손과 발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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