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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6.04.05 09:27

엠마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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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길(24:13-35)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희망이 깨어지면 살 의욕도 잃게 된다. 오늘 본문은 희망을 잃은 채 시골 길을 가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길을 가는 두 사람은 무엇인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분위기는 절망과 슬픔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둘 사이에 끼어들었지만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16절에 보면 그들의 눈이 가리어졌다고 하였다. 왜 그들의 눈이 가리어졌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것일까? 아니면 석양에 잘 분간하지 못한 탓일까? 예수님은 슬쩍 대화에 끼어들어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이들은 이내 슬픈 빛을 띠고 멈추어 섰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 유명한 사건에 대해서 이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는 듯이 말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왜 지금 슬퍼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자기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자로 기대했지만 결국 어이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어떤 여자들이 무덤에 갔는데 그가 살아나셨다는 천사들의 말을 들었다고도 했고, 이 여자들의 말을 듣고 제자들이 가서 확인해 본 결과 정말 무덤이 비어 있더라는 말도 전해 들었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지만 이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였기에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이제 슬픈 빛을 띠고 엠마오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한 때 말씀도 들었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했다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슬픈 빛을 띠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다. 더구나 그 길 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며 여전히 슬퍼하고 낙심하며 길을 가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주님과 함께 있는데도 우리는 슬픈 빛을 띠며 인생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꼭 머물러 있어야 할 예루살렘을 떠나 정반대쪽으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내가 바로 예수라고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런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구약성경에서 자신에 대한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27) 구속사의 가장 절정인 현존하는 몸을 두고 지금 엉뚱한 일을 하시는 것은 아닌가? 너무나 생생하고 강력한 물질적 증거인 육체를 두고 예수님은 멀리 우회하는 길 구약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차선책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방법으로 택하셨던 것이 성경이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당하신 일이 실패가 아니라 성취이고 하나님의 뜻이 좌절 된 것이 아니라 영광 가운데 성취된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들이 말씀을 깨닫게 되었을 때 슬픈 빛은 사라지고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더 이상 실패자로 회피자로 엠마오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고난과 위협이 있고 예수님을 죽인 유대 지도자와 로마의 권세가 위용을 자랑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눈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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