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서 부르는 찬양은 좀 더 간절하고 진실하게 불러야 한다. 세상 노래도 진실하게 부르는 자를 높이 평가해 준다.
언젠가 박진영은 K팝스타 참가자에게 이런 심사평을 한 적이 있다. 20년 넘게 음악을 만들어 온 자신에게 누가 왜 음악을 만드느냐고 물어보면 자신은 이렇게 대답하겠다고 하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처럼 노래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 참가자는 박진영의 노래를 감동적으로 부르면서 울었다. 박진영은 이 참가자가 박진영의 노래를 불렀는데도 마치 자기 노래처럼 불렀다고 하면서 가수는 울어도 되는 직업이라고 하였다. 다른 모든 직업은 제정신으로 일해야 하지만, 우리 직업은 제정신으로 하면 죄라고 하였다.
박진영의 심사평을 들으면서 언젠가 유명 락그룹인 ‘비틀즈’의 공연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탈리아에서 공연하는데 공연 도중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무대로 뛰어올라서 권총을 들고 비틀즈 단원을 겨누었다. 그런 다음 이제 공연을 그만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중에 이 사람을 잡아서 심문해보니 무슨 괴한이나 깡패가 아니었다. 유명한 음악대학 교수였다. 왜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그 교수는 저들의 음악에는 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혼이 없는 음악을 가지고 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에 자신은 참을 수 없었고, 이것은 낭비이고 죄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즐겁게 부르는 세상 음악에도 진실한 마음이 빠지면 가치가 없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에서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것이다. 가장 높고 가장 거룩하신 분 앞에서 우리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부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일 수밖에 없다. 찬양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혹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생각 없이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찬양을 반복해서 부르려고 하는 것이다. 반복하는 것은 곡을 잘 모르는 분에게는 익숙하게 해주고, 이미 익숙한 사람에게는 가사의 의미를 되씹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용을 반복하면 처음에는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반복할 때마다 가사의 내용이 점점 우리 심령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부를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 그 다음에 머리에서 맴돌고, 그 다음에 입술, 그 다음에 마음, 그 다음은 심령 깊은 곳까지 스며들게 된다.
우리는 찬양 가사가 갖는 영적 깊이 보다는 곡의 선율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곡은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찬양은 곡의 선율보다 가사가 더 중요하다. 가사 없는 곡은 음악 감상에 불과할 수 있다.(가사 있는 곡을 악기로 연주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클래식 음악을 교회에서 연주하지 못하게 하던 때가 있었다. 가사가 없기 때문에 교회 음악으로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찬양을 반복해서 부르면 가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 가사가 심령 깊은 곳에 스며들게 된다. 예배에서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우리 찬양이 진실한 고백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