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지만 사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있습니다.
또한 남들이 알게 되기를 바라지 않고 꽁꽁 숨겨놓은 자신의 모습도 있습니다.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런 부분을 지적 당하고 들추어졌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이 때 보통 두 가지로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무조건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 잘못 봤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핑계를 대는 동안에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똑 바로 보지 못합니다.
내가 보지 않는다고 나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한가지 반응은 지적 당하고 수치를 느낀 후에 마음 속으로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냐? 너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
사실 이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눈에는 자기 문제가 안보일 뿐입니다.
자기를 치장하고 속이면 자기 자신도 속아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어째든 상대방의 지적에 대해서 이렇게 복수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자기 문제를 똑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이 오래 지나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반응 메커니즘을 알고 우리의 이런 본성과 싸워야 합니다.
상대방의 지적에 대해서 변명하지 말고 "그 사람은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렴풋이 자기 문제가 보이고 치유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삶을 살아야 하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고 평가를 받습니다. 저 역시 그런 지적을 소화하지 못하고 부인하고 싶을 때도 있고 변명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은 문제가 드러나지만 마음은 점점 더 옹졸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의 문제를 발견하여 아픔 가운데 치유를 경험하는 곳입니다. 혹시라도 누가 자신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 고통스럽더라도 일단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한 시간에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을 앙망해 보십시오.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주님이 우리 모두를 치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한 비판에서 좀 더 여유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비판에서도 좀 더 관대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