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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붙잡고 자라가라(벧전1:23-2:2)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진리가 자꾸 변한다. 어제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 진리가 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우리 신자는 불변하는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신자가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다른 것을 붙잡아야 한다. 자기 경험이나 이성이나 논리를 붙잡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많은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것을 자기도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신자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세상에는 많은 악이 판을 치고 있다. 본문 2장 1절에서도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하였다. 당시 신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런 죄악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죄를 이길 수 있다고 하는가? 그냥 버리면 죄가 없어지는가? 2장 2절에 보면 그 대안으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세상의 악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은 버리라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세상의 객관적인 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우리가 더 성장하고 크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앞에 있는 악이 없어지거나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크게 되면 상대적으로 악이 작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자라면 상대적으로 내 앞에 있는 문제가 작아진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악과 싸우기를 원하지만 그 싸움의 방식은 악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악이 작게 보이고 별로 문제가 안될 정도로 보이게 된다. 지금 이 본문의 말씀을 받는 신자들은 세상의 핍박과 고난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처한 곳은 맹수들이 우굴 거리는 정글과 같은 곳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도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정글과 다르지 않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가? 정글을 피하라는 것이 아니고, 정글에 있는 악을 건져내서 없애버리라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커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은 딱 한 가지만 말한다.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하고 순전한 젖은 말씀을 말한다. 왜 말씀을 젖에 비유했을까? 아기에게 젖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자라기 위해서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이 없다. 영적으로도 우리가 자라기 위해서는 말씀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 왜 말씀만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는가? 말씀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1장 23절에서 우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똑같은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즉 말씀과 성령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은 제3위 하나님이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커지기 위해서 하나님 외에 어떤 것으로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언제나 성령을 의식해야 한다. 그래서 말씀이라는 글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내 인격 가운데 나타날 때 내가 크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만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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