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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6.11.15 09:28

예수마음이 그리운 시절(빌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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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은 그 사람의 바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서 당신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질문을 한다. 신앙에도 진보적 신앙이 있고 보수적 신앙이 있다. 진보적 신앙은 소위 사회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보수적 신앙은 소위 개인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신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여기에 대해서 논쟁을 해왔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 다른 길이지만 신앙인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어떤 때는 진보로 어떤 때는 보수로 반응해야 한다. 중세 시대에 교회가 권력을 가지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했을 때, 참된 신앙인들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개인적인 영성에 집중하였다. 중세를 개혁했던 루터는 수도사였다. 신앙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흘러내려와 마침내 개혁으로 힘이 모아질 수 있었던 것은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개인 영성의 힘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제1,2차 세계대전 때, 온통 세상에 악이 지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을 때 교회는 가만히 기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여 저항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켰을 때, 무고한 조선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을 때 교회는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지 않았다. 교회는 저항했다.

 

교회가 시대에 반응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를 읽어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대통령의 거짓과 위선으로 인해서 불의와 부정이 온 사회에 만연하여 신뢰를 잃어버린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정의와 진실이 사라진 사회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하나님의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탐욕을 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이 더욱 그립고 절실해졌다. 예수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첫째, 예수마음은 자기 낮춤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신성의 본질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런데 예수 마음은 이런 신성에 매달려 있지 않았다. 그 신성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거나 광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과 동등한데도 그 동등함을 내세우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보고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 사탄은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한다. 이것이 죄악의 본질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고자 하였다. 여기에 예수의 마음이 있다.

 

둘째, 예수마음은 자기 비움이다. 비움없는 낮춤은 위선이고 허례허식일 뿐이다. 참된 낮춤은 언제나 자기 비움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 내 안에 있는 탐욕과 독선을 비워 제거해야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하면서 물질적 욕구와 막강한 지배 욕심의 유혹을 이기셨다. 대부분 지도자들은 탐욕과 독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여 추락하게 된다.

 

셋째, 예수마음은 철저함이다. 낮춤과 비움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주님이 철저하게 낮춤과 비움을 따르신 것은 어떤 악의 유혹도 배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처절한 패배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길이 부활에 이르는 길이요 참 평화로 가는 길이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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