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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으로 찾아오신 분(마4:12-16)
대림절 기간입니다.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기다림은 흔히 수동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다림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보는 것을 뜻합니다. 대림절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할까요? 이해인 수녀의 시 <다시 대림절에서>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 밖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림 밖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이 오늘 본문의 정서와도 같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 그랬습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암울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더욱이 이 대상자들은 이스라엘 땅 가운데서도 거의 버려진 땅인 북방 땅에 살던 사람입니다. 15절에 나오는 “스불론 땅, 납달리 땅”은 외적들이 쳐들어올 때 가장 많이 짓밟히던 곳이었습니다. 무지와 질병, 가난으로 천대받고 버림 받은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흑암에 앉아서 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아서 살던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메시야가 와서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의 정서는 내 답답한 삶을 타개하고 새롭게 할 유일한 희망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답답하고 고단한 삶을 타개할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 대림절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녹록치 않습니다. 촛불집회에서 울리는 구호를 들어보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 어둠 속에서 국정을 농단하며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고 했던 일들이 이제 빛 가운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질병 속에서 막연한 회복을 기다리는 분들, 경제적으로 흔들려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설치는 분들, 관계의 고통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 모두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가장 낮고 비천한 곳을 찾아오셔서 빛을 비추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대개 사람들이 찾아올 때는 무엇인가 도움이 될 때 찾아옵니다. 도움이 되지 않고 유익하지 않는 사람은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가치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예루살렘인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쓸모없고 버림 받은 땅으로 가셨습니다.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데 왜 그랬을까요?
성경에 보면 사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 이외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그냥 마음대로 쏟아 붓는 허비되는 사랑은 아닙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은 도움을 제공하여 문제만 해결해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로 삼아 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가지고 가장 낮은 곳에 빛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이 빛은 사랑의 빛입니다. “기다림 밖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이 빛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지고 대림절을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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