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저는 집이 눈에 안 들어 옵니다. 집이 큰지 작은지, 새 집인지 낡은 집인지, 눈에 안 들어 옵니다. 교인들 집을 방문해서 “언제 이런 좋은 집으로 이사 왔어요?” 물으면, “목사님, 우리 집에 지금 두 번째 (혹은 세번째) 오시는 것이에요!” 하며 어이없어 하곤 했습니다.
개인 집 뿐만이 아니라 교회 건물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교회당을 새로 건축한 목사님이 건물을 샅샅이 구경 시키며 자랑스럽게 설명할 때, 집중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건물의 좋고 아름다운 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목회하면서 크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부러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둘째 자동차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슨 브랜드인지, 무슨 모델인지, 머리에 각인이 안 됩니다. 까만 차, 하얀 차, 정도로만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식당 갈 때 누가 차편을 제공해 주면 식사 후에 색갈이 비슷한, 다른 차 앞에 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를 픽업할 때 차가 좋지 않다고 미안해 하고, 차가 지저분하다고 사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셋째 저는 목회 크기가 눈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인지,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인지 의식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목회자에게 “장년 주일 출석이 얼마에요?”하고 쉽게 묻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은 상대방의 목회 상황을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인데 (예를 들면 “교회 부임한지 얼마 되었어요?”와 같은), 상대방은 자신의 목회가 평가 받는다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거북해 하든지, 부끄러워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입니다.
이런 세 가지가 눈에 안 들어오니까 돈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집회 사례금을 많이 주는 교회 담임 목사님이 예뻐 보인다든지, 미국에서 식사하고 팁을 줄 때 작은 액면, 큰 액면의 지폐를 교대로 만작거리며 고민하는 것을 보면 돈 욕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재난을 꼽자면 큰 액수가 걸린 복권 당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큰 돈을 갖고 뭐 하나, 생각만 해도 겁이 덜컥 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를 보고 청렴하다느니, 검소하다느니,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이런 모습이 칭찬 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큰 집에서 살고 싶고,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싶고, 승차감이 좋은 차를 몰고 싶지만, 목회를 위하여 이런 욕구를 자제하는 목사와 사모들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예수 믿고 술을 끊은 후, 지속적인 유혹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위하여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칭찬할 만하지만, 술을 마셔 본 적도 없고, 술 마시고 싶은 욕구도 없어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칭찬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