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부모는 자식과 싸워 이기려는 부모라고 합니다. 자식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두 다리 뻗고 마음 편히 자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고 해요. 부모가 위력으로 자식을 제압하려는 것은 자식의 인격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부모는, 아이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문 열어!, 못 열어?” 하면서 문을 발로 차고, 심지어 자물쇠 기술자를 불러서 문을 따 버립니다. 아이는 숨을 곳이 없기에 결국 창문에서 뛰어 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숨어 있을 때 문 따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억지로 끌어내서 밀어붙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만의 공간을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그 공간에서 눈물 흘리고, 울어도 그냥 내버려 두시는 듯합니다. 물론 다 울고 난 다음에는 “힘들지? 나도 너와 함께 있어”라고 하시고 안아 주십니다.
우리가 불속에 뛰어드는 일만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래, 그럼 한번 해 봐!’ 라고 하십니다.
비유 이야기지만, 탕자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았지만 아버지는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지만 돌아오기를 바라며 문밖에서 노심초사 기다리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공간, 인격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갈등하고 번뇌하다가 어떤 결단을 하게 되고 새로운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보내는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연단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 한 유명한 부흥사는 집회만 하면 수억의 헌금을 작정하게 만들어, 건축을 준비하는 교회들마다 이분을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부흥회 기간 집문서를 헌금하겠다고 작정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그분을 불러서 헌금 작정서를 돌려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을 기도하고 난 후에도 같은 마음이라면 그 때 받겠습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강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을 펼쳐 놓고 “믿어! 못 믿어? 이 교만한 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힘으로 우리를 누르려고 하지 않아요. “경험해 보아라! 네 뜻대로 살아보아라! 살아보고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 실험해 보아라! 그리고 내 말이 맞다면 그 때 순종해라!” 고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것이 느리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게 여기시는 분이 있다면, 상대방의 처지를 살피고 사랑어린 근심으로 섬기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