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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침묵하기(사55:6-9)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요. 장엄한 자연을 대하는 순간 자연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죠. 자연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았고,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존재할 거예요. 그래서 자연은 사람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이 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침묵이 필요하다면 피조물인 자연을 지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대부분 ‘주문’을 외워요. 그들에게는 침묵하는 것보다 주문을 외우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그들에게 직접 말 해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신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신과 마주할 때, 공허한 인간의 주문으로 대신하는 거예요. 정말 신이 살아서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백 마디 인간의 주문보다 살아있는 신으로부터 나오는 한 마디 신의 말이 더 중요할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들을 것이 없기에 침묵할 수 없고, 침묵 할 수 없기에 주문을 외울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분이세요. 그분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서 때로 우리는 손으로 자기 입술을 가려야 할 필요가 있어요. 물론 침묵은 ‘말’만이 아니라 ‘생각’을 멈추는 것을 말해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 방식대로 추측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나님을 나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크게 오해한 적이 있어요.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크게 낙심했어요. 하나님이 무능력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겨우 신앙을 붙잡고 있는 자들도 냉소적인 분위기였어요. 그러다보니 바벨론의 문명이 대단하게 보였어요. 자신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능력 있어 보였어요. 바벨론의 문화와 종교가 식민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사로잡았어요.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라고 했어요. 그 하나님은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고 말씀하신 분이세요. 하나님 생각과 우리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 생각을 버리고 우리와 다른 거기 계신 하나님을 찾고 불러야 한다는 거죠. 내가 찾고 있는 하나님과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다르면 하나님을 바르게 만날 수 없어요. 내 생각에, 신앙을 가져도 고난을 거두지 않으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무능력한 분 같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은 나와 다를 수 있어요.
그러므로 내 생각과 길을 버리고 주님을 찾는 것이 신앙이에요. 나의 작음과 주님의 크심을 아는 것이 진정한 복이고요. 자기 생각의 아우성에 묻히면 하늘에 계신 그분의 신비한 음성을 들을 수 없어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은 날마다 자기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신뢰란 자신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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