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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서 무슨(요 1:43-51)
우리는 모두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편견이란 어떤 견해가 자기중심적으로 쏠려 있는 것이고, 선입견은 알아보기도 전에 자신의 견해를 먼저 갖고 있다는 뜻이에요.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기 어려워요. 더구나 상대가 하나님이라면 더더욱 그래요.
빌립은 예수를 만나고 나서 흥분했어요. 즉시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바로 ‘그분’을 만났다고 하면서,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라고 전했어요. 이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대뜸,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며 네가 사람 잘못 봤다는 식으로 반응했어요. 나다나엘은 예수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그가 어디 출신인가라는 정보 하나만을 가지고, 다 좋아도 그것 하나만으로 아니라고 한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보는 방식과 얼마나 다른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다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하나만 있으면 살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졌지요.
사실 나사렛은 북쪽 변방 갈릴리의 작은 동네였어요. 배우지 못한 가난하고 거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에요. 자기 민족이 기다리던 바로 그분이 그곳 출신이라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에요.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도 자기가 생각하는 ‘나사렛’이 있어요. 다 좋아도 ‘나사렛’이라면 절대 안 되는 거죠. 나사렛이라는 자기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의 깊이에 들어갈 수 없어요.
우리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 요구한 곳까지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주님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급격한 변화는 사실 죽고 사는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은 것이에요. 그런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자기만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라는 편견 혹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편견이 있었지만 나다나엘이 예수님에게 나아왔어요. 빌립이 ‘와서 보라’고 다시 부탁했기 때문이에요. ‘와서 보라’는 것은 네가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하라는 거예요. 나다나엘은 직접 예수님에게 가보기로 해요. 예수님은 나다나엘과 다르게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분이에요.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자 참 이스라엘이고 간사한 것이 없다고 칭찬해 주었어요.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다나엘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마음을 예수님도 아실 거예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나아온 것을 더 높이 평가해 주신 거예요.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보기도 전에 멸시했지만, 예수님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그에 대해 높이 평가해 주었어요. 자기 영혼에 무엇이 존재하는 지가 자기가 보는 것을 결정하고 있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영혼을 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신앙에서 혹은 기독교에 대해서 ‘나사렛에서 무슨’ 이라고 할 만한 자기의 경험이 있다면 나다나엘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다음 예수님처럼 되기를 기도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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