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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나?(마24:45-51)
신자에게 지금은 종말의 시대이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를 종말의 때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처음 오셨지만 아직 다시 오시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물론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이 먼저 주님 앞에 가신 분도 많다. 주님이 오시든지, 내가 먼저 가든지, 우리는 주님 만나기를 기다리면서 이 땅에서 살고 있다. 그럼 주님 만날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주님은 이 비유 말씀에서 두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다. 한 사람을 가리켜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라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을 가리켜서 ‘악한 종’이라고 불렀다. 주인이 두 사람에게 각각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라’고 부탁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그 일을 하고 있었던 반면에 악한 종은 그렇지 못했다.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지냈다. 악한 종은 왜 주인이 기대했던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일까?
악한 종은 주인이 언제 올 것인지 시기와 때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48절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자기의 주관적인 느낌대로 판단하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니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왔을 때 그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주인의 기대와 반대되는 삶을 살다가 결국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때와 시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왜 때와 시기에 관심을 갖는가? 늘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주님이 언제 오는지 알아서, 다만 그 때라도 제대로 살다가 폼나게 주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뭐하러 시기에 신경써겠는가?
반면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주인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주인이 맡겨준 일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때를 따라 집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과 풍성한 삶을 위해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주님을 만나는 것 자체보다는 날마다 삶 속에서 이런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님은 시기와 때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 늘 깨어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라고 했다. 지혜가 무엇인지는 25장의 열처녀 비유에서, 충성이 무엇인지는 이어지는 달란트 비유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열처녀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렸지만 신랑이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모두 졸게 되었다. 신랑이 도착했을 때 모두 일어났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이 없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준비된 기름으로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지혜는 미리 준비하는 삶을 말한다. 결과를 헤아리고 준비하는 삶이 지혜다.
충성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주인을 위해서 살아가는 태도이다. 어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신실함을 요구하는 것이 충성이다. 지혜가 있다면 충성할 수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의 결과가 어떨지를 헤아려보고 미리 준비하여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오늘 임직자들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들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사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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