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GM 자동차 회장이었던 젝웰치는 어릴 때 말을 심하게 더듬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울면서 집에 뛰어왔는데, 엄마가 어린 젝웰치를 안고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친구들보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서 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금방 말이 나오지 않는 거야"
기업가로 큰 성공을 한 후, 젝웰치는 어린 시절 엄마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노라고 회상했습니다. 같은 현실이라도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지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일만 일어나고 좋은 말만 듣고 살면 좋겠지만, 우리 현실은 칭찬보다는 비난, 격려보다는 모욕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와서 위로를 받고 싶은데, 잘잘못을 떠나서 오히려 모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왜 이래? 도대체 이게 교회 맞아?'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 있어요.
이상적인 교회의 기준으로 보면 한참 수준미달이라는 생각 때문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지요.
그런데 저는 교회가 죄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교회에 나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자기 허물과 죄를 깨달았기에 주님을 찾게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가 병원이라는 말도 합니다.
갖가지 깨어진 마음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혹시 교회에 와서도 모욕을 받는 일이 있다면 낙심하지 마시고, '우리가 다 환자라서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중세 수도사들은 모욕 당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영적훈련의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칭찬이 사람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 모욕을 하면 영적 훈련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수도사들은 자기에게 모욕을 주며 화를 내게 만드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다녔다고도 합니다.
그들은 모욕 받을 때 두 가지 훈련을 했습니다. 하나는 참는 훈련이고' 또 하나는 모욕 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훈련입니다. 한마디로 용서하는 훈련인 거죠.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고 사람들이 자기를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히12:2-3) 뿐만 아니라 모욕 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우리도 모욕 받는 것을 주님을 닮아가는 훈련이라고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