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말 가운데 ‘절대로’, ‘반드시’, ‘결코’ 등과 같은 단어를 많이 말하는 사람은 ‘완벽주의자’ 성향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는 자신이 정해 놓은 것을 어기게 되면 스스로 실망하고 자책하여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좋은 것들까지도 평가절하 할 위험이 큽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자존감이 낮고, 모험적인 일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인색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고집이 세고, 사고의 유연성이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완벽주의 기준으로 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쓸모없는 과잉헌신을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아예 포기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칼힐티라는 사람은 “미완성을 괴로워하지 말라.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완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깨닫게 하려고 일부러 수많은 미완성을 내려주셨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어떤 일에 몰두할 때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나온 과정이야 어떠하든지 간에 자신은 앞만 보고 주님을 향해 달려간다고 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기의 부족함을 깊이 깨닫지 못해서 믿음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됩니다. 내 부족함과 한계를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품을 수 있습니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지지 맙시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 몫이고 그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맙시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것까지가 우리의 분량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것까지가 우리의 분량이고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분량이고 그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기 몫의 꽃을 피우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약하고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그 한계를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고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랍비가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내게 ‘왜 너는 모세가 못되었느냐?’라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왜 너는 너 자신이 되지 못했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사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