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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데 있어서 늦은 시간이란 없다. 하나님에게 돌아가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관계 회복의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렇지 않다.

 

요엘 2:12에서 이제라도...돌아오라고 했다. 여기서 이제라도라고 한 것은 그 앞에 나오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전대미문의 엄청난 메뚜기 재앙과 전쟁의 재앙, 무시무시한 적의 군대의 장수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 이 세 가지 절망적 상황을 따져보면, 때가 늦어도 한참 늦은 것 같다. 야구로 말하면, 스코어가 100인데 9회말 투 아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한다.

 

이제라도라는 단어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집 나간 탕자가 오늘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문 닫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고통 받기를 원하지 않고 구원 받기를 바라는 자비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하루에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죽었는데 왜 지금 나는 살아 있을까? 아니 살아 있게 했을까?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나 죽은 참사를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이 남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했다.

 

18명이 죽었을까?’ 라고 의문을 가졌을 때, 주님은 그들이 죽은 이유를 묻지 말고 너희가 살아 있는 이유를 물어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들이 죽었다는 것이 놀랍고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가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고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시면서 살아 있다는 것은 회개의 기회라고 하신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열매 맺을 기회를 주신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살아 있지만 사실은 매일 매일 죽어가고 있다. 시계의 초침이 일초일초 흘러가는 것과 정비례해서 우리는 일초일초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이 죽음의 덫에 걸려 있다. 저는 많은 장례예배를 인도했고, 또 장례식에 조문객으로도 참여했다. 제 나이 28살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주가 되었다. 인생을 돌아보니, 조문객과 유족 사이를 오가며 살다가 언젠가 내 자신이 관속에 드러눕는 송장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 사람도 예외없다.

 

이렇게 죽음에 매여 있는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명예일까? 아니다. 진정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생명뿐이다. 그분만이 죽음이라는 내 죄 값을 치르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주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오늘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이제 살아 있는 동안 만회를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냥 이대로 주님 앞에 서기에는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없다. 오늘을, 부끄러운 인생의 만회를 위한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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