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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위에 선 사람(마13:1-9)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인터넷 TV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맘껏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많이 들려진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말씀은 들리지만 그 말씀을 진정으로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진리 보다는 허탄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많지만 왜 말씀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다. 길가에 떨어지기도 하고 돌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이 씨가 공중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다 땅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옥토에 떨어진 씨만이 결실을 맺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와 옥토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말씀의 씨를 받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던 반면에 옥토는 그 씨를 삼켜버렸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씨를 왜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가치를 몰랐거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옥토는 자기 의지로 그 씨를 삼켜버렸다.
씨를 내버려 두는 것도 자기 의지이고 씨를 삼키는 것도 자기 의지이다. 씨앗이 자기 스스로 역사하는 법이 없다. 물론 땅에 삼켜진 것은 그 때부터 자기가 역사한다. 그러나 삼켜지기 전까지는 삼키는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 말씀은 씨앗이라 처음에는 약하고 초라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 약한 씨앗이 땅에 묻히는 순간 싸앗과 땅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서 결실이 된다. 여러분들이 아멘만 크게 한다고 해서 결실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감동을 받는다고 해서 결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말씀을 삼킬 때만 결실이 주어질 뿐이다.
말씀은 저절로 삼켜지지 않는다. 말씀을 삼키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옥토가 씨를 삼킨다는 것은 한마디로 옥토가 자기를 부인했다는 뜻이다. 자연상태 그대로는 씨를 받을 수 없다. 자기가 갈아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뽑혀 나가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씨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말씀을 삼키기 위해서는 옥토가 여러번 갈아 엎어져야 한다. 말씀 삼키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기에 반드시 나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옥토가 되는 것은 나의 의지의 문제다.
옥토가 씨를 삼킨 결과는 무엇인가? 처음에 옥토가 씨를 삼키지만 나중에는 씨가 옥토를 삼킨다. 씨가 발아하면 그것 때문에 옥토가 깨어난다. 옥토가 씨를 지켜주면 나중에는 씨가 옥토를 지켜준다. 우리가 말씀을 삼켜서 지켜주면 그 말씀이 나를 지켜준다는 뜻이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면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주듯이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싹을 틔웠을 때 그 말씀은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것이다. 30배, 60배, 100배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새로운 말씀, 놀라운 말씀을 찾아서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이미 들은 말씀을 삼키려고 애써야 한다. 새로운 진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진리를 몰라서 내가 달라지지 않고 결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말씀을 삼킬 때 그 말씀의 능력을 우리가 맛보게 될 것이다. 말씀을 삼키는 사람이 말씀 위에 선 사람이다. 새해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삼키고 말씀위에 서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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