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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비결(삼하16:5-14)
신자는 말을 잘 하는 것보다 말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말도 잘 들었다. 부하의 말도 잘 듣고 선지자가 죄를 지적할 때도 그 말을 잘 들었다. 심지어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의 말까지도 잘 들었다. 도대체 다윗은 어떤 자세로 말을 들었을까? 말 잘 듣는 세 가지 비결을 찾아보자.
첫째,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한다.
칭찬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 자기의 진면목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비난하고 책망하는 말은 정말 듣기 싫지만 그 안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에서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외적으로도 초라했고 내적으로도 비참했다. 도망가는 길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다윗을 저주하고 욕했다. 8절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너는 피흘린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는 이미 치루었기에 시므이의 저주는 억울한 면이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말속에 자기 허물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듣기 싫은 말도 잘 들으면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의 감춰진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다.
시므이의 저주에 대해서 군대장관 아비새가, ‘저 놈 당장 목을 쳐야 한다’고 했을 때 다윗은 말린다. 10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11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했다. 정말 시므이가 하나님에게 계시를 받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 다윗의 영성이다. 성전에 있거나 기도할 때가 아니다. 저주하는 말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나를 미워하고 욕하고 비방하는 말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도 자신에게 엄청난 유익이 될 수 있다. 욕을 듣고 욕으로 반응하면 비슷한 사람이 되지만 그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셋째,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저주하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감정이 흔들린다. 화가 날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윗은 화를 내거나 위축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본다. 12절에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다윗은 그 저주 때문에 하나님이 선으로 갚아주실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단지 미래를 좋게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것까지도 바꾸어 선이 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기에 그렇게 소망하는 것이다. 욥은 고난도 힘들었지만 친구의 말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그 때 욥의 고백은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욥은 자신의 고통, 친구의 말 조차도 자기를 단련하는 도구로 여기고 있다. 하나님은 나한테 행한 어떤 악한 일도 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말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비결이다.
부정적인 말,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그러나 혹시 그런 말을 들었다면 다윗처럼, 자기를 새로 발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것을 통해서 새롭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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