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나눔터
HOME > 나눔터 > 나눔터
주님 계신 곳에 기쁨이 있다(마9:14-17)
신앙에서 감정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감정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기복이 심한 요소이다. 그래서 감정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감정이 없는 메마른 신앙생활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 하나님도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화를 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심지어 질투하기도 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에 거룩한 감정이 교환될 수 있다.
변덕스러운 감정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탁월하고 가장 아름다운 분을 만났는데 우리 안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님과 진짜 만나게 되면, 삭개오처럼 평생 모은 재산을 허비하는 것도 크게 고민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기쁨이 있다. 우리 안에 기쁨이 없다면 주님과의 만남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본문에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유대인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금식하는 날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하고 말씀하셨다. 모든 유대인들은 매주 두 번 금식해야 하는 규례가 있지만 결혼식이 있는 주간에는 금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규정을 두었다. 결혼식은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마치 일생에 한번 있는 결혼식 축제와도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결혼식 축제는 어떤 날인가? 가족과 당사자는 눈물이 날만큼 기쁨이 넘치는 날이다. 지켜보는 하객들도 같은 마음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일생에 한번 있는 결혼식과 같은 기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신랑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결혼식 같은 날만큼 기쁜 날인가? 그렇지 않다면 신랑이신 예수님이 옆에 계시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기쁨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것이 안되면 참된 신앙생활이 아니다. 살다보면 건강을 잃을 때도 있고, 계획하던 대로 일이 안 풀려서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대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스스로 탄식하게 된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슬픔과 낙심과 절망을 덮을 만큼 큰 기쁨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12:2)라고 하였다. 주님은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참으셨다. 기쁨으로 수치를 견뎌내신 것이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순교했다. 죽어가는 그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고 하였다. 성경은 그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기에 그는 기뻐하며 순교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환히 웃고 계신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과 딸인 것을 알고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샘솟는 기쁨이 된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