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가 삼위일체 주일이었습니다.
삼위일체는 우리에게 익숙한 교리이지만 쉽게 오해할 수 있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제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몇 분 계실 것 같은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세 분’이라고 하니까 ‘한 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의심하실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기독교의 신비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가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도 됩니다.
삼위일체는 독립된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이 꼭 한 분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독립된 세 분이지만, 존재 방식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존재 방식이 하나라는 것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경에 유사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두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결혼해서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라고 한 것은, 두 존재가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살라는 뜻 같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불완전해서 두 사람이 온전한 한 몸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세 분을 온전히 하나로 존재하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예화들 때문입니다.
가장 잘못된 예화가 이런 방식의 예화들입니다.
가령, 한 사람이 아내에게는 남편이 되고, 자식에게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에는 아들이 되는데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또 태양은 열이 있고 빛이 있는데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식의 예화가 잘못된 것은 역할이나 기능은 셋이지만 존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존재가 셋이라는 것이지 역할이 셋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가 셋인데 하나의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 본래 의미에 좀 더 가까운 예화를 들라고 하면 ‘사람’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물질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물질과 영혼은 각각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의 물질은 이 땅에 남고, 보이지 않는 영혼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물질과 영혼이라는 분리될 수 있는 독립된 두 존재가 지금 내 안에서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본래 의미에 좀 더 가까운 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하기 직전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행7:56) 보았다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과 그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따로따로 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우리도 천국에 가면 삼위 하나님에게 따로따로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