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년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정말 눈 깜짝 할 새에 반년이 지나갔습니다.
생케비취가 쓴 유명한 <쿼바디스>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베드로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후에 네로 황제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여 로마를 떠나 아비안가도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그는 자기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 물어보았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조용히 말씀하였습니다.
"나는 로마의 반역하는 백성을 위해 두 번째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서 가노라. 그런데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년의 반을 걸어왔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길에 서서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보시면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소명의 길은 아픔과 고난이 뒤따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 거룩한 부담감이 되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어느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이 물살이 센 개울을 건널 때 무거운 돌을 머리에 짊어지고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무거운 돌이 중심을 잃지 않도록 무게중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마찬가지로 독수리는 자신의 날개를 짐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코끼리도 자기 코를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날개나 코는 가장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은 우리 삶의 무게 중심이자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 삶이 흔들리지 않고 바로 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